
2025년 8월, 칠월칠석 무렵의 깊은 밤이었다.
아랫배가 끊어지는 듯 아파 119 구급차를 타고 지역 종합병원 응급실로 갔다.
그날 오전 동네분들과 콩국수를 먹었다고 말씀드렸다. 몇 가지 질문 뒤 소화제를 받았고, 더 아프면 비뇨기과에 가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귀가했다.
내가 느끼기에는 통증의 원인을 충분히 확인받지 못한 진료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통증도 가라앉아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에도 가끔 아랫배가 불편했다.
응급실에서 들은 말이 생각나 비뇨기과를 찾았다. 소변검사와 혈액검사를 받고 방광염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두 차례에 걸쳐 약 두 달 동안 항생제를 복용하니 통증은 거의 사라졌다.
그렇게 큰 문제가 지나간 줄 알았다.
그해 가을에는 아내와 함께 체중관리를 시작했다. 식단을 바꾸고 운동을 열심히 했다.
서너 달 만에 몸무게가 약 6kg 줄었다. 아내도 비슷하게 체중이 빠졌다. 우리는 몇 년 동안 옷장에 넣어두었던 옷을 꺼내 입으며 즐거워했다.
당시에는 그저 다이어트가 잘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암 진단을 받고 나서야 그 체중감소를 다시 돌아보게 됐다. 식단과 운동의 변화가 있었기에 몸에서 보내는 신호를 구분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나는 평소 병원을 자주 다녔다. 6개월마다 혈액검사를 받았고, 몇 년 안에 받았던 대장내시경에서도 용종이 없었다. 가족들도 장수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암을 내 일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마음에 걸리는 증상들은 있었다.
예전부터 혈변을 경험했고, 몇 달 동안 변비도 이어졌다. 하지만 혈변은 오래 운전해서, 변비는 식단을 바꿔서 생기는 일이라고 받아들였다.
은퇴 후에는 경상남도에 작은 집을 마련해 가을과 겨울이면 자주 오갔다. 따뜻한 남쪽에서 등산하며 지내는 생활이 좋았다.
그렇게 바쁘고 즐겁게 지내다 2026년을 맞았다.
평소에는 연말까지 미루던 건강검진을 그해에는 일찍 받고 싶었다. 가까운 곳에서 선택할 수 있는 병원이 많지 않아, 앞서 응급실을 찾았던 지역 병원에서 부부가 함께 종합검진을 받았다.
아내의 결과는 왔는데 내 결과는 오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 결과지가 다른 주소로 발송돼 있었다.
그 사실을 모른 채 중국여행을 예약하고, 집안 어른들과 식사하고, 봄 난 전시회를 준비했다. 노인회 총무로 단체여행 계획도 짰다.
그러던 3월 초,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대장내시경을 받아야 하는데 왜 오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통보를 받지 못했다고 말씀드렸고, 이후 병원을 찾아 검사 준비를 시작했다.
그런데 내게는 장정결제를 마시는 일부터 큰 장벽이었다.
과거 숨이 막히는 사고를 겪은 뒤 생긴 외상 후 스트레스로 컵에 담긴 물을 마시기가 어려웠다.
집에 있는 작은 찻잔과 그릇을 모두 꺼내 하나씩 시도했다. 그러다 아내가 만든 페인팅 도자기 그릇이 유난히 편하다는 것을 알았다.
내게는 그 그릇 하나가 참 고마웠다.
검사를 준비하는 작은 과정에도 나만의 어려움이 있었고, 아내가 만든 그릇이 그 고비를 넘는 데 도움이 됐다.
내시경검사 후에는 결장 부위가 심하게 부어 기구가 통과하지 못했다는 설명을 들었다. CT와 MRI 자료를 가지고 상급병원으로 가보라는 권유도 받았다.
자세한 결과를 기다리는 사흘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 마음을 잡고 가족에게 알렸다. 외지에 있는 가족뿐 아니라 사촌들에게도 이야기했다.
수십 년 동안 형제처럼 지낸 동네 형님들도 식당으로 모셨다. 오리백숙을 대접하며 내 상황을 말씀드렸다.
위로를 받았고, 뜻밖에 도움이 되는 정보도 들었다. 식사 뒤에는 차를 마시며 옛이야기를 나눴다.
그날 밤부터 잠이 오기 시작했다.
혼자 품고 있던 걱정을 나누니 마음의 무게가 조금 달라졌다.
‘병은 알리라’는 옛말이 내게는 큰 도움이 됐다.
치료받을 병원도 알아봤다.
알고 지내던 의료진을 통해 다른 병원으로 연결할 기회가 있었지만, 동네 형님 한 분이 교통편을 생각해 삼성서울병원도 알아보라고 하셨다.
생각해보니 한두 번 방문하고 끝날 일이 아니었다.
앞으로 오랫동안 함께할 병원을 고르는 일이었다. 치료뿐 아니라 그곳까지 어떻게 다닐지도 중요한 문제였다.
그렇게 2026년 3월 20일, 삼성서울병원 진료를 받았다. 조용범 교수님을 만나고 4월 6일 수술했다.
처음 심한 복통으로 응급실을 찾았던 때부터 약 7개월이 지난 뒤였다.
수술 후 회복은 빠르게 느껴졌다. 다음 날부터 걷기 시작했고, 몸 상태도 생각보다 괜찮았다.
그런데 떼어낸 간결절의 조직검사 결과가 나왔다.
암이었다.
최종적으로 4기라는 설명을 들었다. 식은땀이 흘렀다. 간신히 추슬렀던 마음이 다시 무너졌다.
수술이 끝났다는 안도 뒤에 또 다른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퇴원 예정일이 가까워질 무렵에는 잠잘 때 베개가 젖을 만큼 식은땀이 났다.
간호사님께 말씀드렸고, 혈액검사를 받았다. 염증수치가 높다는 설명을 듣고 일주일을 더 입원했다.
지금도 그때 증상을 말씀드린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집에서 병원까지는 200km가 넘는다. 오전 9시 진료에 맞추려면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한다.
집으로 돌아간 뒤 상태가 나빠졌다면 다시 병원까지 오는 길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먼 곳에 사는 환자에게 퇴원은 반가운 일이면서도 걱정이 따르는 일이었다.
퇴원 후에는 먹는 것과 움직이는 일에 신경을 썼다.
나는 오랫동안 야생화 농장에서 여러 식물을 길러왔다. 자연스럽게 식물과 음식에 관한 정보에도 관심이 갔다. 침대 머리맡에 식물을 두고 익숙한 향을 가까이하며 마음의 위안을 얻기도 했다.
다만 당시 내가 어떤 음식이나 식물에 기대를 걸었던 것과, 그것이 실제 암 치료에 효과가 있는지는 다른 문제였다.
생활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채소를 넣어 음식을 만들고, 청국장은 한 번에 만들어 소분해 보관했다. 가족들의 입맛과는 달라도 내 식사를 챙기는 나름의 방법이었다.
걷기도 이어갔다.
불안할 때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내게는 그 호흡이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됐다.
과거 사고 이후 폐쇄된 공간을 힘들어하던 터라 CT나 MRI 검사를 받을 때도 호흡에 집중했다. 잠들기 전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도 활용했다.
4월 말부터는 폴폭스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내가 교수님께 드렸던 질문 중 가장 기억나는 것은 하나다.
“항암은 몇 차까지 해야 하나요?”
김승태 교수님은 우선 시작해보자고 하셨다.
끝이 언제인지 알 수 없는 치료를 시작한다는 것이 막막했다.
그래도 나이가 있는 만큼 잘 먹고 체력을 지키는 데 마음을 썼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움직이며 다음 치료를 준비했다.
부작용은 여러 모습으로 찾아왔다.
오심과 구내염, 두피 발진과 탈모, 딸꾹질, 기운 빠짐, 피부와 손발의 불편함까지 겪었다.
특히 오심과 구내염은 예상보다 힘들었다. 오심은 약을 먹고 나아졌지만 입안이 헐어 생기는 불편은 만만치 않았다.
그렇게 한 차례씩 치료를 이어갔다.
3차부터는 베바시주맙이 추가됐다. 이 글을 쓰는 2026년 9월에는 10차까지 진행하고 있다.
그동안 종양표지자 검사에서 문제가 없다는 설명을 들었고, 세 차례 CT에서도 반가운 결과를 들었다.
이제 한 번 더 검사한 뒤 앞으로의 항암 횟수를 결정하자고 하셨다.
아직 치료가 끝난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끝을 논의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큰 희망이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첫차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려 병원에 도착하는 생활.
치료받은 몸으로 다시 먼 집을 향해 돌아가는 길.
지방에 사는 환자에게 치료는 병원에 도착하기 전부터 시작되고,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이어지는 일이었다.
그 시간을 지나며 이제 다음 계획을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도 난관이 있을 것이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마음도 쉽게 편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지난 4월을 떠올리면 지금이 감사하다.
수술과 4기 진단으로 마음이 무너졌던 봄을 지나, 오늘은 치료의 다음 단계를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하다.
함께 치료받는 모든 분이 잘 회복하시고, 각자의 일상에서 건강과 행복을 되찾으시기를 바란다.
※ 이 글은 대장암 환우 카페 ‘암행권’ 회원 푸르메님이 2026년 9월 12일 게시한 「지방의 비애 ㅡㅡ」를 바탕으로 정리했습니다. 진료 과정과 검사 결과는 글쓴이가 경험하고 이해한 당시 상황을 기준으로 합니다. 특정 음식·식물·온열기구의 항암 효과나 부작용 예방 효과는 이 경험담으로 확인할 수 없으며, 원문에 언급된 ‘항암식품 순위’는 기사에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